강력한 아군으로서의 문학 _ 자기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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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월 모일

강력한 아군으로서의 문학 _ 자기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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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아군으로서의 문학_자기결정



 사고, 소망, 감정, 기억 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달리 표현해본다면, 자기 결정의 의미는 우리가 그것들을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업입니다. 어떤의미에서는 가장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문학이 있습니다. 문학은 어떻게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요? 읽기와 쓰기가 자기 결정력을 습득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문학작품을 읽으면 사고의 측면에서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열립니다. 인간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문학작품을 읽기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에 대해 이제 상상력의 반경이 보다 넓어진 것입니다. 이제 더 다양한 삶의 흐름을 상상해볼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직업과 사회적 정체성, 인간관계의 다양한 종류를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한 삶의 내적 관점에 대해서도 우리의 공감 능력이 성장합니다. 우리는 정신적 정체성의 성공과 실패 발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결정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실패하면 어떻게 해서 실패하는 것인지도 알 수 있지요.

 문학작품을 읽음으로써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는 것은 자기 결정을 추구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문하는 사람에게 결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이러한 질문의 답은 오직 여유로운 가능성의 장 안에서 여러 가지로 입장을 바꿔보는 정신적 활동을 할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서 자기 결정에 있어서 자아상의 서술적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았습니다. 문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법입니다. 내외적 에피소드에 관한 짧은글들은 빨리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좀 더 길고 복잡하게 서술하는 것은 긴 호흡과 하나의 구조가 필요하기에 그보다 더 어렵습니다. 문학이, 아니 오직 문학만이 우리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절정을 향한 드라마적 전개이며 이 부분이 자아상의 핵심을 조명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독서보다 좀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는 무의식의 판타지라는 깊은 기저에서 온 것일 때라야만 읽는 사람을 사로잡는 큰 매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내적 검열의 경계를 느슨히 하고 평소라면 무언의 어둠 속에서부터 경험을 물들이던 것을 언어로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은 거대한 내적 변화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소설 한 편을 쓰고 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이전의 그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언어와의 관계가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경험을 언어로 생생하게 그려내는 일입니다. 그중에는 자신만의 목소리, 자신만의 선율을 찾으려는 시로도 포함되고요. 문학적 글쓰기는 말에게 그것이 가진 원래의 의미와 시적 힘을 되돌려주려는 노력입니다.

 이런 것을 염두해두고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다시한 번 새롭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말이 자신에게 맞거나 맞지 않는가 하는 물음과 지속적으로 부딪히게 되지요. 이것은 개별적 단어 하나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문장의 리듬과 단락 전체 즉 말의 음악이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집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가 쓴 글이 어떤 울림을 가지는지 알아내는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이 울림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순수한지 아니면 냉소적인지, 얼마나 감상적인지, 실망스러운지 아니면 분노해 있는지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멀리 떨어져서 뭔가를 발견하는, 그냥 그뿐으로 그치는 행위가 아닙니다. 자신의 목소리와 자신의 울림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사건이지요.

 즉 우리 안에서 잘못된 울림을 내는 것을 추방하고 새로운 말과 새로운 리듬을 시도해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의 소설을 끝내고 난 작가는 전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책을 들고 말없이 소파에 앉아 아주 가끔씩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왜 지루해하지 않는지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축구를 하러 다시 밖으로 나갔지요. 글을 깨우치고 얼마 되지 않아 작가 카를 마이를 발견한 나는 강렬한 한낮의 햇빛을 가리려고 덧문을 내리고는 스탠드 불빛 - 밤과 꿈꾸기와 환상의 빛 만을 켠 채, 글을 읽으면서, 펼쳐지는 상상력에서 비롯된 경험의 강물에 나를 온전히 맡기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습니다. 책 속에서 펼쳐지는 일이 내 안에서 더 많은 작용을 일으켰기에 창문 너머 바깥세상의 일보다 더 진짜같이 느껴졌지요. 극장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거리로 나섰을 때 보게되는 일상의 무의미한 일들보다 극장 안에서 펼쳐지는 픽션이 더 진짜 같았으니까요. 그리고 그느낌은 영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내 상상력의 물결, 상상의 중력에 이끌려 들어 갈 때, 오직 그때만이 진정으로 나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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