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왜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는가?
"진리와 정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누구도 진실성을 정치적 덕성들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거짓말은 언제나 정치꾼이나 선동가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일에 필요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 도구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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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거짓말은 도덕적 결함과는 관련이 없다. 정치적 의견은 다양한 세계관과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되므로 순수한 사실만 지향하지 않는다. 사실보다는 사실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중요한 것이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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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내걸었던 수많은 공약은 대부분 거짓 약속, 즉 공약으로 끝난다. 국민을 위해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정책들이 본래 의도한 대로 실행될 수 없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 실행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약속하는 거짓말임에 틀림없다. 정치인들이 정책만 바꾸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즉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정치적 이념과 방향까지 바꾼다. 이념과 정책을 바꿔가며 거짓말을 반복하는 정치인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 필연적 결과는 두말할 나위 없이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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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상황에서도 정치인들은 여전히 시민의 신뢰가 필요하다. 반대로 시민들은 복잡한 상황에서 자신들을 이끌고 갈 정치적 지도자를 갈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거짓말의 정치'를 그만두고 '진리의 정치'를 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거짓말 대신에 진리가 힘을 얻는다면, 정치는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단호한 대답은 우리의 희망을 좌절시킨다. 한나 아렌트는 1967년 발표한 "진리의 정치"와 1971년에 발표한 "정치에서의 거짓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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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기만, 고의적 거짓,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당한 수단으로 사용된 공공연한 거짓말은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로 우리와 함께 존재해왔다. 진실성이 정치적 덕목에 포함된 적이 없으며, 거짓말은 정치적 거래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도구로 늘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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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짓말을 도덕적 악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일삼는 것은 도덕적 덕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들은 본래 진실과 사실에 바탕을 두고 정직하게 행위를 해야 하는데,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적 거짓말은 죄나 악덕과 같은 도덕적 결함과는 관련이 없다. 한나 아렌트는 오직 진실만 말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영역의 바깥에 있다고 말함으로써 거짓말이 정치적 행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아렌트의 분석대로라면 우리가 거짓말에 대해 아무리 분노하더라도 정치적 거짓말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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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정치적 판단력을 가지려면 진리와 거짓말의 대립보다는 오히려 사실적 진리와 거짓말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정치적 무대에 오르려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한다. 거짓말은 정치적 행위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이 말은 상당히 도전적이다. 정치꾼들의 수많은 빈말과 거짓말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절망의 나락으로 떻어뜨린다. "거짓말쟁이는 행위 하는 사람인데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단연코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거짓말은 정치적 행위이고, 진리는 비정치적이다. 정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행위이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이야기할 뿐, 바뀔 수 있는 현실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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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사회의 조직된 거짓말은 우리의 정치적 판단력에 심각한 영향을 끼침으로써 현실과 사실을 비튼다. 우리는 어떻게 거짓말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을까?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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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권력의 손안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요점은 권력이 그 본성상 결코 사실적 현실의 확실한 안정성을 대체할 무엇인가를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적 현실은 이미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손이 닿지 않은 차원으로 성장했다. 사실들은 완고하다는 점으로 자기주장을 한다. 그리고 사실들의 취약성은 특이하게도 상당한 복원적 탄력성과 결합되어 있다. 사실들의 되돌릴 수 없는 동일한 비가역성은 바로 모든 인간 행위의 특징이다. 그 완고함에 있어서 사실들은 권력보다 우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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