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리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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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시간은 흐리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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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벨리

 



 과학 저서는 내게 친숙하지 않지만, '시간' 이라는 단어가 눈길을 잡았다. '시간이란 무얼까?'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 성장하고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자전적인 소설과도 같다. 그렇다면 나의 시점으로 본 소설은 발단 전개 마무리 중 어느 곳을 향하고 있을까? 하나의 시점이라면, 그것은 흐르고 있는 현재의 시간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고정된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과거의 시간, 현재의 시간, 미래의 시간 참으로 오묘하다. 지금 듣고 있는 노래의 음을 따라 내가 하나의 노래로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시간의 흐름이 있기 때문에가능한 것일까?

 이탈리아 태생의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 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적 대가로, '제 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 카를로 로벨리가 쓴 비교적 최근 작이다. 이 책은 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본 물질, 에너지, 공간에 관한 이야기이며, 다음으로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경험하는 시간과 저 우주의 근간에 있는 원초적인 시간은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다르다면 어째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 등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일종의 답변서이다.

 지구와 우주와의 시간은 다르다. 하물며 지구 속에서 시간은 다르게 작용한다. 정밀한 시계로 측정한다면, 높은 산과 평지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며, 산에 사는 친구와 평지에 사는 친구가 수년 후에 만난다면, 평지에 사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살아온 시간이 짧아 덜 늙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로벨리는 과거 - 현재 - 미래가 선형이 아닌 훨씬 더 복잡한 구조로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현대에 들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은 산업시대 이후 기차가 도입되면서 정립되었다. 정확한 시간에 기차가 도착하고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은 언제 어디서나 찾아야 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다. 거기에 더불어 뉴턴이 시간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였다. 시간은 주체이며, 장소와 상황에 따라서 변하게 도입되는 변수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럼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사건에 대한 일종의 약속이라고 하면, 지금 내앞에 보이진 않지만, 1분 1초가 달라지고 있는 이 흐름의 현상들은 무얼까? 로벨리는 제 2 열역학법칙과 엔트로피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열은 차가운 곳으로 이동한다. 역은 성립할 수 없는 진리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이처럼 에너지가 아니라 '엔트로피'라고 이야기한다. 에너지가 세상을 움직이는 총체라면 100이라는 에너지를 받았을때 100이라는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으니, 우리는 먹고 자고 하지 않아도 기계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서(초기우주)에서 무질서로 향하고 있다. 우리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들은 질서의 체계로 확립되어 있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엔트로피 무질서로 나아가고 점프하면서 전개되어 왔다. 생명체, 살아있는 모든 세포들은 서로 촉매작용을 하는 네트워크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무질서가 퍼져나가며 붕괴되는 과정 속에 있다.

 사물의 배열은 하나의 물리계가 나머지 세상과 상호작용할 때 그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인과, 기억, 흔적, 세상의 발생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단지 관점의 효과일 수 있다. 하늘의 회전 처럼 세상에서 우리의 특별한 관점이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다. 이렇듯 시간에 대한 연구는 필연적으로 다시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 올 수 밖에 없다.

 "손목에 찬 시계는 바다에 던져버리고 시간이 잡고자 하는 것은 바늘의 움직임일 뿐이라는 것을 꺠닫는 편이 낫다. 이제 시간이 없는 세상으로 들어가보자"

 역시 내면의 깨달음,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타인을 믿지 못한다면, 나 자신도 실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타인을 믿지 못하면 나 자신도 믿지 못하는 숱한 경험을 하게된다. 그렇듯이, 시간 또한 사건들의 총체이지만, 인류의 작은 뇌가 발달한 것처럼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대비해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어떤 점인 사건들로 엔트로피가 늘 무질서하게 발산할지는 몰라도, 우리는 엔트로피 무질서를 낮추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때가 과거고, 어느 때가 미래인지 어떤 시점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이 사고를 지닌 인류의숙원이 아닐까 싶다. 사실 물리학도가 아니라면 조금 어려운 책이다. 띠지에 로벨리 박사님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아니였다면, 이 책을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천동설을 믿었던 고대인처럼 무지의 관점보다 열역학의 법칙 또는 아인슈타인보다 더 대단하다고 느꼈던 볼츠만박사와 엔트로피의 존재를 알 수 있어 만족한다. 

 

 +시간은 단지 물질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 간의 관계, 좀 더 엄밀히 말해 이 관계들의 동적인 구조에 나타나는 양상이다. 그래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다. 이 것이 이 번역 책의 제목인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인 이유다. 우주의 시간은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르게 작동한다. 마치 지구가 평평한 것 같은데 사실은 구면인 것처럼, 태양이 도는 것 같은데 사실 지구가 도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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