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루리
본문 바로가기

북 리뷰

긴긴밤- 루리

반응형

긴긴 밤 - 루리



 "노든 나는 누구에요?" "너는 너지" "그게 아니라 바다에 가서, 여행을 떠나고, 그래서 다른 펭귄들을 만나게 되면 그 펭귄들 속에서 나는 누구인거예요? 아무리 많은 코뿔소가 있어도, 노든은 노든이잖아요. 나도 이름이 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노든이 나를 만나러 오면, 다 똑같이 생긴 펭귄들 속에서 나를 찾기 어렵잖아요. 노든이 내 이름을 부르면 내가 대답할 수 있게, 나한테도 이름이 있으면 좋겠어요.""날 믿어, 이름을 가져서 좋을게 하나 없어 너도 이름이 없었을 때가 훨씬 행복했어 게다가 코뿔소가 키운 펭귄인데, 내가 너를 찾아 내지 못할 리가 없지. 이름이 없어도 네 냄새, 말투, 걸음걸이 많으로도 너를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걱정마"

 이따금 '금쪽 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오은영 박사님의, 예리한 질문들이 명장면을 만든다. 솔루션과 해결 방향보다, "어머님의 유년 시절은 어떠셨나요?",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엄마에게 어떤 말을 가장 듣고 싶으신가요?" 라는 물음에 운명의 수레처럼 자신의 유년시절과 똑같은 갈등을 겪고 있는 엄마는, 제 자신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제 자식에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왈칵 눈물을 쏟는다. 아이의 마음엔 응어리가 없다.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야 하는 건 언제나 어른이다.

 21회 문학 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긴긴 밤은, 어린이 대상 도서지만 일명 '어른이 책' 이다. 책을 읽다보면 파스텔 톤의 일러스트 그림들도 수록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선, 글 보단, 그림 때문에 눈물을 참느라 애썼다.

"지구 상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을 소개합니다!"

 어린 코뿔소 노든은 가족을 잃은 어린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코끼리 고아원에서 산다. 그곳에서 지혜로운 코끼리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시간이 흐르면 고아원에 남을지, 자연으로 떠날지 코끼리들은 선택한다. 코끼리 고아원에 평생을 보내는 코끼리도 있지만, 바깥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코끼리도 있다. 노든에게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날이 다가왔고 노든은 그렇게 자연으로 생의 첫 여정을 떠난다. 자연에서 만나 자신에게 야생의 삶을 가르쳐준 코뿔소 한 마리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고, 가족이 되었다.

 그렇게 제 식구가 된 아내와 딸과 함께 완벽한 나날을 보내지만 불행이 찾아왔고, 밀렵꾼들의 습격으로 아내와 딸은 뿔이 잘린 채 숨을 거두게된다. 죽은 제 가족 앞에서 노든은 아주 끔찍한 긴 긴 밤을 보낸다. 노든 또한 인간의 발견으로 동물원으로 가게 되고, 동물원에서만 생을 살았던, 코뿔 소 앙가부를 만난다. 노든은 인간에 대한 복수심으로 동물원 탈출을 감행하지만,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하늘에서 거대한 불덩이 (전쟁/습격)가 떨어졌고, 동물원 식구인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을 품고 있는 치쿠와 함께, 자연 또는 바다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정체성'
 코끼리 품에 태어난 노든은 자신이 코끼리인 줄 알고 살았으며, 치쿠가 품었던 알에서 태어난 펭귄은 자신을 돌봐준 노든과 함께 생활해, 자신이 펭귄이 되는 것보다 코뿔소가 되는 것이 더욱 쉽다고 말한다. 동물이 다른 종의 품에 자라면, 그 동물인 것 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인간인 우리도 한 겨울 보다 초 겨울이 더욱 춥다고 느끼는 것 처럼 환경에 쉽게 지배당한다. 그러나 인간은 익숙한 환경을 뒤로하고, 자신이 부정당하는 실패와 패배감, 굴욕감이 있을지라도 자신의 '정체성' 을 찾으려고, 매일 세상 밖을 두드린다.

'이름'
 치쿠의 약속으로 치쿠가 품었던 알에서 태어난 펭귄과 함께 바다로 떠나는 길을 계속 해서 걸어나간다. 펭귄은 자신에게 이름을 붙여달라고 말하자, 노든은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다. 사실 동물에겐 이름이 필요없다. 그저 살기 적당한 장소와 먹을 것이 있으면 된다. 노든이라는 이름도 아내와 딸 곁에 쓰러진 코뿔소를 잡아다가 동물원에 놓은 인간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노든은 펭귄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음으로써 새끼 펭귄에게 이름보다 값진 선물을 준다.

 

새끼 코뿔소를 거두는 코끼리의 모습, 출신을 알 수 없는 알을 품은 펭귄 치쿠, 노든이 새끼 펭귄 '나'를 지키려는 모습에서 차이를 의식하지 않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항상 남과 다름을 생각하는 어른인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반복되는 불행 속 '더러운 웅덩이에도 뜨는 별'을 잃지 않고 걸었던, 노든과 펭귄의 긴긴 밤이 참, 가슴 아프지만 따뜻한 한 편의 동화였다. 

 

"기분 좋은 얘기를 하다가 잠들면, 무서운 꿈을 꾸지 않아, 정말이야, 못믿겠으면 시험 삼아 오늘 나한테 바깐 세상 얘기나 들려줘봐" 

 

(작가의 인터뷰 중)

 

 제가 자주 꾸는 악몽 중의 하나가, 어릴 때 부터 같이 지낸 강아지 뭉크를 찾아 헤매는 꿈인데, 꼭 똑같이 생긴 강아지들이 수백 마리 있는 곳에서 뭉크를 찾아야 했어요. 못 찾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뭉크를 찾아낼 때도 있는데 그때는 뭉크의 냄새랑 엉덩이에 있는 작은 사마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찾아내곤 했어요. 

가끔 전 집에 혼자 있을 때면 발소리만 들어도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장보고 집에 오는 아빠인지, 목욕탕에서 돌아오는 엄마인지, 퇴근하고 집에 오는 동생인지도 알아맞힐 수 있어요. 저는 저다운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제가 좋아하는 이들은 제대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저를 제대로 알아봐 줄 거라는 확신도 있고요. 

 

나는 태어나자마자 노든에게 살아남는 법에 대해 배웠다. 노든은 엄격했다. 알 바깥의 세상에서는 살기보다 죽기가 더 쉽다고 했다. 살아남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데 치코와 윔보 때문이라고 했다. 

 

<긴긴밤>에는 '살아남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때로는 헬기에 매달려 홀로, 불길에 휩싸인 동물원 밖에서 누군가와 함께, 망고색 하늘 아래에서 눈물범벅으로, 그리고 거대한 바다를 눈앞에 두고, 엉망진창이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습니다. 

살아온 시간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치열하게 살아남는 과정에 있고,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