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장그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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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섬- 장그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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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 장그르니에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 씩이나 해 보았었다.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에게 대하여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인다거나,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난 늘 해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기에? 아마 이런 생각은 다만 마음이 약하다는 중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정신과 시간 사이에는 견디기 어려운 관계가 맺어져 있다.

 우리나라 제일 남쪽에 있는 서귀포 앞 바다에는 4개의 섬이 있다. 범섬, 새섬, 문섬, 섶섬. 4개의 섬이 모두 무인도이며, 천염기념물로 지정된 섬이다. 문섬은 아무것도 없는 민둥섬이라는 뜻이고 새섬은 억새풀인 새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섶섬은 나무가 많아 '설피섬' 이라고도 불리우며 홍귤이 자생하는 섬이다. 범섬은 섬 모습이 마치 호랑이 같아 불리워진 이름이며, 섬 연안에 학술적 가치가 큰 해산 생물이 다수 생육하고 있고 연성산호 등의 군락이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규정 짓기 좋아하는 인간은 제 편의에 따라 하나의 섬, 작은 별, 그 위를 날아가는 새, 발에 걷어 채이는 돌멩이에게도 이름을 지었다. 섬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이름으로 불리우게되었으며, 영겁의 세월 속 전설이나 신화가 생기기도 하고,연민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장그르니에의 여행의 공상처럼, 인간의 머릿속이 망망대해라면 그 바다엔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이 잔영의 섬처럼 떠있다. 수면 위로 떠오른 섬이 의식이라면, 수면 아래 감추어진 섬은 무의식이다. '나'는 의식의 지배 속에 살지만, '나'의 원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섬 아래, 바닷 속 깊은 곳에 잠긴 무의식이다. 내 안엔 연민의 섬 하나가 있고, 나는 언제나 자유를 갈망하고 그 섬을 그리워 한다. 따사롭고 부드러운 해변에 앉아 하염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바라보는 일이 유일한, 나의 섬으로 떠나고 싶다.

 알라딘 장바구니에 오랜 시간 머물던 책이였다. 어느 개의 죽음으로 장그르니에를 알게되고, 카뮈의 멋진 추천사로 책을 읽게 되었다. ㅡ 알베르 카뮈는 그르니에의 책을 펼쳐 드는 젊은이들을 부러워하며 말한다. "나는 아무런 회한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펼쳐 든 저 낯 모르는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젊은 청년의 목적없는 여행과 사랑, 포기라는 것을 배운 중년의 공허와 노인의 지혜 그리고 인생의 황금기에 끔찍한 사고로 눈에 피가 맺히고 다리는 절고 몸뚱이에는 총알이 박힌 채 돌아온 고양이 몰루의 느긋한 최후가 담긴 짧은 에세이 단편 선집. 김화영 번역가의 말처럼, '한 문장이 섬' 이되어, 그 사이에 바다가 있고 말하는 것을 통해서 말하지 않는 것을 더 많이 말하는 책이였다. 케르겔렌 군도, 고양이 물루, 행운과 부활의 섬, 보로메의 섬들 (...) 전체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의 생각과 문장들은 미지의 섬처럼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어 참 인상 깊은 책이였다.

(문장 중에서)

 또 어떤 사람들은 고양이와 같이 지내는 데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았다. 이때 습관이란 말은 사랑이란 말과 동의어이다.

 바다 위에 떠가는 꽃들아, 가장 예기치 않은 순간에 보이는 꽃들아, 해초들아, 시체들아, 잠든 갈매기들아, 배의 이물에 갈라지는 그대들아, 아, 내 행운의 섬들아! 아침의 예기치 않는 놀라움들아, 저녁의 희망들아 ㅡ 나는 그대들을 이따금씩 다시 보게 되려는가? 오직 그대들만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그대들 속에서만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티 없는 거울아, 빛 없는 하늘아, 대상 없는 사랑아...... .

 나는 그냥 살아간다기보다는 왜 사는가에 의문을 품도록 마련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오히려 '변두리로 밀려나' 살아가도록 마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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