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 오가와 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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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감동적으로 읽은 책, 박사가 사랑한 수식 갑작스러운 옛 향수에, 중고서점에서 최대한 깨끗한 책을 사다 읽었다. 불공정이 만연한 사회에, 박사의 말을 가만 듣노라면, 마음 한켠이 참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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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교통사고로 인해 1975년에 기억이 멈추었다. 그의 기억 테이프는 80분. 80분이 지나면, 그간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의 양복엔 꼭 기억해야할 메모 클립들이 너덜너덜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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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9번째 가사 도우미로 박사의 집에 취직하게 된다. 9번째 딱지를 놓은 박사의 집은 가사 노동이 꽤 힘들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박사의 기억'이란 특이한 병 외엔 무탈하게 하루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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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면, 박사의 기억 속 처음 마주하게 되는 주인공에게 매일 신발 사이즈와 같은 특이한 숫자에 대한 인연을 묻는다. 가령 그녀의 신발치수 '220'과 박사의 손목시계 뒤 '284'는 우애수인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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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약수를 전부 더하면, '284' 반대로 '284'의 약수를 전부 더하면, '220' 주인공은 우애수와 같은 숫자를 찾으려고 해도 우애수는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게된다. 우애수의 인연이였을까, 앞으로의 주인공과 박사의 특별한관계를 암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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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주인공에게 10살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홀로 아들을 키우기 때문에 아들은 늘 열쇠 목걸이를 걸고 다니며, 집에 홀로 엄마를 기다린다. 무뚝뚝한 박사는 그 사실을 알고 '아이는 엄마가 늘 필요하다는 것'을 넌지시 말하며,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와서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퇴근할 것을 요청한다. 그렇게 셋의 특별한 우정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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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아들을 처음보고 평평한 머리를 어루만지며 '루트' 라는 애칭을 붙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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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루트처럼 순수함을 지니고 있으면 소수 정리의 아름다움도 한결 돋보이지"
"이걸 사용하면 무한한 숫자와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에도 번듯한 신분을 줄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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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하는 박사의 성격 탓에 늘 고요한 표정으로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려 노력하지만, 그의 감정 한 켠 두려움과 매일 반복되는 80분짜리 테이프 안에 자신의 병을 마주하기란, 마음 속의 얼마나 큰 혼란이 내재하는지 루트와 주인공은 공감하고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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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보니, 박사는 나를 모르는 박사로 돌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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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의 기억으로 빚어진 여러 사건들을 지나보내고 루트의 11번째 생일을 마지막으로 박사는 가족인 미망인과 함께 요양원으로 향하게 된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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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와 같은 사람 아니 시대의 어른이 주변에 많았으면... 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주입하려고 다그치지 않고, 그저 수의 연산처럼 과정을 즐기고 자그마한 실수도, 하나의 발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관대한 마음을 지닌 어른. 연산을 할때면 극도로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지만 아이와 관련한 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이의 시선에서 공감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박사와 같은 시대의 어른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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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도 그런 어른과 같은 사람으로 세월을 흘려보내야지 라고 마음 속으로 다짐해볼 수 있는 책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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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또는 루트와 박사가 좋아하는 야구에 대한 일화도 종종 나오기 때문에 수와 야구를 좋아하거나 박사의 집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은 읽어봐도 좋을 참 따뜻한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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