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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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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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는 농담 - 허지웅



 그는 2018년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 방송이 아닌 병동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평소와 같은 보통의 하루가 아닌, 투병으로 인해 수많은 바닥과 천장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과연 그 바닥과 천장 사이를 어떤 마음으로 오갔을까? 실제로, 내 마음이 바닥과도 같고 천장과도 같을 때가 있다. 그것도 하루에 말이다. 신나고 즐거운 일은 계속될 수 없었고, 우울하고 슬픈일은 내 마음을 짖누르다가도 갑자기 다른 일이 그 무게를 대신하기도 했다.

 그런 하루에 여러 감정들이 마음을 스치는데, 죽음 앞에서는 그 오만가지의 상황과 감정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또한 몸 상태가 고통 없는 죽음의 단계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프더라면 사소한 일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 같다. 우리는 평생 감당하지 못할 짐들을 홀로 껴안고 살아간다. 어쩌면 평생의 과업을 우리는 이번 생에 다 이룰 지 못할 수 도 있다. 그것을 이루다가 죽음을 맞이할 수 도 있고, 죽음 이후에 숙원했던 과업이 내가 아닌 누군가를 통해 완성될 수 도 있다. 인생에 있어서는 결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향해 나아갔던 결심이 중요한 것같다.

 매일 같이 부서지더라도 일어나자. 힘내자. 라는 것은 아니다. 죽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길에서 수많은 천장과 바닥에서 싸우는 날이 오기 전까지 내 사명이 다할 때 까지 "이건 아무 일도 아니야" 라고 생각하면, 조금 시행착오를 겪어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지 않을까? '실선이 아닌, 점선을 따라서' 간다고 생각하자. 내일은 모두가 살지 않았던 하루니까

 마냥 낙관적이지 않고, 과장된 희망으로 점철되지 않은 글들. 그의 글 속에서 방황하는 20대의 나를 볼 수 있었다.
이번의 그의 에세이는 청년들을 위한 글들이라고 한다. 나 또한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나보다 아래 또래의 친구들을 바라볼 때 마냥 애틋한 감정이 있다. 라떼 감성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추억들을 그 친구들을 보면서 상기할 수 있었다. 20대에는 그 나이에 걸맞는 추억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고 많이 얘기해준다. 불안을 힘으로 서로 연대하며 노력하고, 그 떄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경험해볼 수 있는 것, 그들이 성공과 실패를 맛봤다고 표현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다.

 20대는 '성실함' 이 곧 무기다. 대부분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평범함 속에 성실함을 더한다면, 큰 자산 또는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의 글에도 나와있어 꽤 공감되었다. 인맥은 주변의 사람이 많은 것이 인맥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필요로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존재 유무이다. 내가 주변 사람들의 신용이 어떠하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서로를 평가하고 가늠하고 잰다. 그 가늠 속에서 나의 무기를 만들자. 그리고, 쓸 수 있으면 사회에서는 자신에게 이로운 가면을 쓰는 것 또한 좋다. 세상은 그만큼 본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관대하지 않다.

 이 밖에 그의 글을 통해 내 생각들을 정리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히어로보다 괴물을 좋아하는 것과 순백의 피해자는 없다는 것. 니체에 대한 글들 모두 적어 놓고 두고두고 읽고 싶은 글들이었다. 그리고 <보통사람>을 읽었을 떄 눈물이 찔끔나기도 했다. 나 또한 보통사람이 꿈이고, 지금도 보통의 행복을 꿈 꾼다. 과장된 행복을 꿈꾸기 보다는 사소한 걱정이 좋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하는 사소한 걱정 이런 것들이 모여 행복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를 걱정해주고, 누군가도 나를 걱정해주는 것. 그 힘으로 서로가 내일 다가올 하루를 편안히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해준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

 +책 내용 보다, 에세이를 읽고 나서의 생각들을 아주 짧게 적어보았습니다. 인생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나오는가에 따라 다 달라지는 것이 인생이지요. 에세이는 이런 면에서 새로운 인생들을 글을 통해 만날 수 있고 그가 요약한 생각의 힘이 서로에게 전달되어, 내 생각과 공감의 크기도 커지는 것 같아 좋은 것 같아요. '자기 앞의 생' 의 소설이 떠오르는 에세이였습니다. 생은 절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평온한 3월 한달이 되길 바랄게요.



본문 중에서

"결론에 집착하는 건 가장 피폐하고 곤궁하고 끔찍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가장 훌륭한 안식처다. 나도 거기 있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죽음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는 다른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동안, 나는 죽음 이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지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뭐가 진짜 이기는 거고 지는 건지조차 구분이 어려워진다. 되는 놈만 늘 되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이겨 본 사람만이 다시 이길 수 있고, 지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불행한 일을 겪으면 사람의 머릿 속은 그렇게 된다. 그리고 불행의 인과관계를 따져 변수를 하나씩 제거해보며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가장 그럴 싸한 대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멋지고 빼어난 것들 덕분이 아니라 언제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된 선행들 때문에 구원받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과거의 인생을 반복하고 있고 그것을 다시 영원히 반복한다는 아이디어는 끔찍한 생각이다. 니체는 정확히 바로 그 공포에 맞서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좋을만큼 모든 순간에 주체적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관없다고, 이토록 끔찍한 삶이라도 내것이라고 외치라는 것이다. 나이가 그런 삶을 사랑하라 주문하는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바로 그 순간 네 삶의 고통과 즐거움 모두를 주인의 자세로 껴안고 긍정하라는 아모르파티와 결합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너무 늦게 인정하면 삶이 파국으로 빠지는 걸 막을 수 없다."

"위버렌쉬는 전지전능한 슈퍼맨이 아니다. 말 그대로 스스로를 극복해나가는 인간이다. 영원회귀와 아모르파티는 이 삶이 영원히 똑같이 반복된다 할지라도 주체적으로 끌어 온가 긍정하며 살아내겠다는 자기 선언이었다. 위버렌쉬는 이를 실천하는 인간이다. 나아가 내 삶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 제대로 바꾸고 극복하며 살아내겠다는 이야기다. 즉,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란 자기 삶을 향한 주체적인 긍정으로 부터 나온다."

"한국만큼 청년의 치기 어림이 쉽게 공격당하는 나라는 없다. 한국만큼 청년의 시행착오가 용서받지 못하는 나라는 없다. 한국만큼 청년이라는 말이 염가로 거래되는 나라는 없다. 밥벌이를 하며 살아남아 세상을 바꿀 주체가 되려면 끝까지 버텨야한다. 그러니까 가면을 써라"

"드라큘라는 사람의 피를 빨지 않느냐고 괴물은 먹고 살기 위해 피를 빨지만, 사람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피를 빨고 산다. 그것도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말이다. 누가 진짜 괴물이란 말인가."

"그런 사람들이 있다. 청년들을 조심해야 한다. 자신이 누군가의 속내를 쉽게 측정할 수 있다거나 특히 순수성과 양심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주의해라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이익을 위해 멋대로 누군가를 천사로, 악마로 단정하고 몰려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자들. 우리는 정의롭다며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 그런자들을 피하는 것 만으로도 삶이 충분히 입체적이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 피해자는 그냥 피해자다. 착한 피해자도 나쁜 피해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말은 불필요하다. 그런 말을 하는 자에게는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숨은 의도가 반드시 있다."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평정심과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밝은 눈을 갖게 되기를"

"순백의 피해자란 실현 불가능한 허구다."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죽지 못해 관성과 비탄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다."

"결론에 사로잡혀 있으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사소해진다. 결론에 매달려 있으면 속과 결이 복잡한 현실을 억지로 단순하게 조작해서 자기 결론에 끼워 맞추게 된다."

"시간을 돌리는 방법에 관해선 알더라도 돌리고 싶지 않다.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대로 잘 껴안고 살아갈 생각을 해야지 그것을 인력으로 애써 돌이킨다고 해서 처음처럼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삶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맙소사 그걸 이 나이 먹고서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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