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씨돌 용현 - sbs스페셜 제작팀, 이큰별, 이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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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요한 씨돌 용현 - sbs스페셜 제작팀, 이큰별, 이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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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씨돌, 용현 - sbs스페셜 제작팀, 이큰별, 이승미



 처음에는 책 제목에만 이끌려 구매한 책이다. 용현과 요한은 이름 같은데, 씨돌은 뭘까? 왜 이름과 같은 단어가 나란히 나열되어 있는 것일까? 책 표지의 투박한 미소의 아저씨의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첫번째 이름 '씨돌'
 북한 군의 발길도 닫지 않았다던 강원도 정선 첩첩 산중의 작은 마을 '봉화치' 이 곳에는 '씨돌' 씨가 있다. 삼십년 전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이따금 신발이나 옷 따위를 입지 않고, 산신령같은 그의 모습에 처음에는 '간첩' 이라고 오인을 받는다. 하지만 늘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아끼지 않았으며, 언제나 자신의 것을 조금이라도 내어주려고 하고, 그것마저 여유롭지 못하면 들꽃을 엮어 선물하는 그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들였으며, 이제 봉화치라는 풍경화에 그가 빠지면 섭섭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늘 칠흑같은 새벽이면 어둠을 뚫고 고라니의 발자국을 지웠으며, 산 짐승들에게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누어주던 그의 모습, 짐승 들이 겨울 잠에 깰라 아궁이에 불을 떼지 않는, 자연의 순리대로 질서롭게 자신의 터전을 가꾸어 나가던 그가 사라진 것이다. 그를 찾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이름들을 찾아 나서야 했다. 바로 그의 본명 '용현' 이다.

 ✔︎두,세번째 이름 '용현, 요한'
 그는 어린 나이에 친부모를 잃었다. 11살 대구 sos 어린이 마을 그곳은 미혼의 여성이 어머니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는 대안 양육시설이다. 최해연 여사는 그곳의 '1호 어머니'였으며, 용현은 '1호 아들'이었다. 평생 아이들만을 위한 헌신적인 최해연 여사의 삶을 통해 용현은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이후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1980년 홍제동 성당에서 '요한' 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는 학교를 마치면 늘 자전거 기름칠을 하여 동생들을 태워주었으며, 학교에선 말이 없었으며 독서하기를 좋아했다. 하루는 늘 점심시간 마다 조용히 사라지는 모습에 친구 '황진희' 씨는 반 친구들이 십시일반 반찬을 거두어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다고 회상한다. 이후 87년 당시 야당을 찍었다는 이유로 선임들에게 폭행 당해 숨진 '정영관' 상병의 의문사 진상 규명과, 민주화 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가족 모임 '한울삶' 과 함께 투쟁하여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모습을 들어냈다. 이 구절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기 싫어하나 늘 베푸는 것엔 인색하지 않았던 용현씨의 성품이 드러난다.

 1989년 2월 민주화 운동으로 인하여 백골단에게 심한 매질을 당해 천주교 신부님의 도움을 받아 정선까지 오게 됐다. 당시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몸 곳곳에 흔적들이 남아있었으며, 그가 자연인으로 살아가게 된 계기도, 그로인한 상처를 치유하고자 함이라고 말한다. 말 없이 자신의 땅과 집터를 기부하고자 편지만을 남겨놓고 사라진 씨돌은 제작팀의 도움을 받아 요양 병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2016년 6월 용현은 의식불명의 상태로 강원도 정선 봉화치 마을에서 서울 한 대학병원으로 긴급 이송된다. 수술을 받고 겨우 깨어지만, 반신마비에 말도 겨우 할 수 있는 상태이며, 왼손 왼다리만 움직일 수 있다.

 책을 읽은 후, '순간포착세상이런일이, 나는 자연이이다.' 영상을 시청해서 일까, 그가 휠체어에 힘겹게 앉아있는 모습이 꽤나 찡했다.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 그의 모습은 디지털 매체를 통한 나 같은 사람, 산중 봉화치 마을에서 그에게 지청구를 놓았던 할머니, 억울한 영혼들의 외마디, 굉장히 낡고 허름하지만 동물들이 끊임 없이 오갔던 그의 터전이나 무엇이 그를 기억하고 있을까, 더이상 자연의 내음 그대로를 간직한 자연인의 모습이 봉하치 마을에 없다고 생각하니 꽤나 쓸쓸했다. 이렇게 향기로운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는 한 없이 그립다.

 '소유냐 존재냐' 에서 언급한 '존재지향적 인간' 이 그의 모습일까, 존재 그대로 가치있는 사람, 그렇기에 그의 모습이 전파를 타고 많은 이들의 마음에 하나의 별로 박히는 것 같다. 씨돌씨가 꼭 쾌차해서 다시 그가 살았던 봉하치 마을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산 새, 개구리, 붕어, 거미, 노루, 다람쥐, 밀, 호박, 옥수수, 감자 모든 것을 지키며 가꾸었던 산신령으로 말이다. 

 

 <실제 씨돌이 살고 있는 봉하치 마을 정선 산자락 인근에는 산 불이 난 적이 없다. 그가 자처해서 산불 지킴이를 맡았기 때문이다.> 

 

 "요한, 씨돌, 용현으로 살아오는 동안 민주화 운동도 하고 삼풍 백화점 붕괴사건에서 사람도 구하고 정선에서는 자연도 지키고, 그런데 그런 일들이 정작 선생님께 도움되거나 관계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왜 그런 희생적인 삶을 사셨어요?" 

 

 우리의 질문에 용현의 왼손이 주저 없이 움직입니다. 노트 위에 거침없이 적어 내려간 말은 당시 인터뷰 현장에 있던 전 스텝들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머리를 한대 맞기라도 한 듯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들을 우리는 얼마나 모른 척 지나쳤던가, 얼마나 까맣게 잊은채 살고 있었던가, 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씨돌 아저씨의 첫 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연인;을 넘어 '원시인'에 가까워졌습니다. 물질문졍을 최소화하고 자연 속에서 온전한 평화를 느끼는 아저씨의 삶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를 연상케 했습니다. 

 

 : 소유가 중요한 것일까, 존재가 중요한 것일까 마음의 공허함이 찾아오는 모든 분들께 '요한, 씨돌, 용현'의 책을 소개하고 싶고, 더불어 '나는 자연인이다.' 편을 시청해서 그의 웃음 소리가 귀를 타고 가슴으로 흘러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책의 수익금 일부는, 용현씨의 '재활치료'를 위한 치료금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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