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 줌파라히리
작가는 '미국인'의 정체성이 아닌 '미국에 사는 사람' 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작품 '축복받은 집' 을 통해 서른 셋의 나이로 장편소설이 아닌 첫 단편소설집으로 퓰리쳐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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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녀가 로마에 머물며 이탈리아어를 발견하고, 공부하고, 탐색하고 마침내 이탈리아어 작가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특유의 간결한 문장과 깊은 성찰로 기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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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모국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쓴 첫 산문집이며 23편의 글, 그리고 소설 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을 '호수 건너기'에 비유한 작가는 외국어에 대한 어려움과 두려움 그리고 이탈리아어에 대한 갈망을 섬세하게 글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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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하다 ( provare a ) = 노력하다 (cercare de)"
이 조합, 이 어휘의 방정식은 내가 이탈리아어에 대해 시도한 사랑의 은유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끈질긴 시도, 끊임 없는 시험 이외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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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만 보고 선뜻 골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목에 대한 끌림이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작은 책은 바로 이탈리아어 '사전' 이였다. 평소 사전에 대한 큰 흥미가 없던 나는 왜 작가는 이탈리아어에 매료되었을까? 라는 궁금함이 생겼다. 그녀는 작가로서 비교적 빠르게 입지를 굳혔고, 자신의 모국어로 얼마든지 글을 써도 되는데, 20년 동안이나 이탈리아어를 끊임 없이 갈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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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도통 공감을 할 수 없었지만, 책의 중반부 부터 그녀의 살아온 배경에 대한 설명이 충분한 설득력을 주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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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분열된 정체성 때문에, 아마 성격 때문에 난 불완전한, 다시 말해 결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언어적인 원인 때문일 수 있다. 동일시하는 언어가 부족한 탓이다. 미국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나는 벵골어를 외국인 억양 없이 완벽하게 말하고자 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뭣보다 내가 완벽히 그분들의 딸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한편 난 미국인으로 온전히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내가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했음에도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뿌리를 박지 못하고 붕 떠 있었다. 난 두 가지 면이 있었고, 둘 다 불완전했다. 내가 느꼈던 불안, 간혹 지금도 느끼는 불안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실망스럽다는 느낌에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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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두 언어를 모두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벵골어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영어는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이 두언어 사이에서 엉거주춤 붕 떠 있었다. 벵골어와 영어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혼란에 휩싸였다. 해결할 수 없는 모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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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언어적 여정의 세 번째 꼭짓점인 이탈리아어가 오면서 삼각형을 만들었다. 직선이 아닌 삼각형 모양 삼각형은 복잡한 구조이고 역동적인 형태다. 세 번째 꼭짓점이 다투기만 하던 오랜 짝인 벵골어와 영어의 역학 관계를 바꾸었다. 나는 싸워대던 그 불행한 커플의 산물이었찌만 세 번째 꼭짓점은 그 관계에서 생겨나지 않았다. 세 번째 꼭짓점은 내 갈망, 내 노력에서 생겨났다. 오롯이 나로부터 비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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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 아마도 그녀의 삶의 과정에서, 언어적으로 느끼는 결핍이 존재 했는데 이것을 우연히 만난 이탈리아어가 충족을 시켜주었을 것이다. 항상 직선처럼 충동하던 두 언어를 이어준 이탈리아어 그녀가 생각하는 활자들에 대한 사랑의 은유도 참 좋았다. 어쨌거나 자신(정체성) 을 찾아가려는 노력 그 모종의 고백들이 아름다워보였다. 그녀가 느꼈던 삶의 박탈감이 내용 전반적으로 어둡게 다가오는 면이 있었지만, 그녀 스스로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첫 산문집으로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트라우마를 깨버리는 시도가 되었길 바란다. 작가의 고백을 들으니 나 또한 타성에 젖어 노력이나 시도없이 마무리하는 날이 늘어나는 것 같다. 설레는 무언의 일을 찾으려 미루어둔 일기를 적어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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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대한 사랑이 있으신 분,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줌파라히리의 산문집 그녀가 20년간 이탈리어 공부를 하며 작은 책 (사전)을 통해 열심히 단어를 수집하고 자신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문장들이 유려해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한 작가 개인의 고백이라 이입이 안될 수 있지만, 165페이지로 금방 읽히는 책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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