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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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좀머 씨 이야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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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가느다란 금발에다 유행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낡은 스웨터 차림의 남자 사람 만나기를 싫어해 상 받는 것도 마다하고, 인터뷰도 거절해 버리는 기이한 은둔자, 이 사람이 바로 전 세계 메스컴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좀 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이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면, 소설 속 대치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보다는 작가의 일생이나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더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나의 식견이 그리 깊지 않지만, 작가가 처해진 환경 속 펜을 들지 않으면 안될만한 이유를 그의 생애를 통해 찾아본다라면 더욱 깊이 있고 즐거운 책 읽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p.121로 그리 두껍지 않다. 금방이라도 색이 묻어나올 것 같은 장자끄 사뻬의 그림은 독자로 하여금 스토리의 생기와 상상력의 채도를 더욱 높여준다. 짧은 소설이라 금방 읽히는 대신 글로써 작가의 생각, 집필 의도가 내 생각과 맞물려 가까워지기란 여간 쉽지 않다. 오히려 해석하려는 의도를 버리고 작가가 화자로 설정한 한 소년의 눈으로 좀머씨를 글로써 묵묵히 관찰했다.

 (줄거리) 나무에 오르는게 제일 쉽고 좋은 한 소년이 있다.
유년기 시절의 대부분을 나무 위에서 보낸 소년은 호수를 끼고 있는 아랫마을에 살고 있다. 이 곳에는 좀머라는 기이한 남자가 살고 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폭우가 몰아치나 우박이 쏟아지나 늘 무엇이 쫒기듯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걸어다닌다. 그가 어디를, 왜, 얼마나 다니는지는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설은 좀머 아저씨의 이야기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소년이 좋아하는 소녀, 미스 풍켈 선생님의 코딱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일, 소년의 자살 사건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며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그러면서도 어딘가에서 호두나무 지팡이와 검정 배낭을 메고 묵묵히 길을 걷고 있을 좀머씨가 궁금해지게한다.

 비와 우박이 떨어지는 얄궂은 날, 소년의 아버지는 길을 걷고 있는 좀머씨에게 차에 타라고 권유한다. 좀머씨가 쳐다보지 않자 아버지는 "그렇게 걷다가는 죽겠다." 라는 말을 한다. 그때 좀머씨는 아버지를 쳐다보며 "그러니까 제발 나를 그냥 놔주시오." 라고 말한다.

 책에서 이 대목이 가장 인상 깊었다. 작가가 1949년 독일 출생인 것을 생각할 때 좀머씨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는 2차 세계 대전 하에 독일 군인으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군인이였던지, 박해를 받은 와중 어렵게 목숨을 보존한 유대인이였던지 걷지 않으면 안되는 그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죽겠다." 라는 말에 반응하며 그러니까 제발 나를 그냥 놔달라는 좀머씨의 외침. 살기 위해 걷는다는 좀머씨에게 '걷지말고 차에 타라' 라는 말은 문제의 해결 방법(합리, 이성의 틀)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야 했을 것인지 아니면 그를 있는 그대로 (폐소공포증, 속박, 고립,밀폐) 놔두어야 했을 것인지 무엇이 정답일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스포일러가 있어요.)
 그러던 중 소년은 형에게 물려받은 자전거를 형보다 더 빠르게 탈 수 있는 때가 오게 되었다. 어느날 저녁에 좀머 아저씨가 호숫가에 걸어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한순간 아저씨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좀머 아저씨의 밀집 모자만을 바라본다.결국 좀머 아저씨가 스스로 호숫가에세 자살함으로써 글의 종착역에 다다른다.

 좀머씨가 사라졌을 때 주위 사람들이 잠깐 궁금하다 잊어버린 것처럼 그의 자살 이유를 알지 못했으며 마을 주민들의 궁금증도 금방 사그라들었다. 결국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좀머씨의 사정을 우리 마음대로 판단하고 해석하려들고 좀머씨를 한 사람, 인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기이한 인간 좀머씨"라고 판단해 부를 수 밖에 없었다. 소년의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소년 그도 성인이 됌으로 좀머씨의 자살을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나는 살아감에서 고통 이외 즐거움과 기쁨을 얻어가는 존재로 내가 사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연일 이어지는 코로나 속보, 자연재해 같은 생에 연관된 사건들이 들려올 때면, 삶보다 죽음이 도리어 앞서 느껴진다.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지만, 살아가는 건 곧 죽어가는 것이다. 삶 속에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려 하기 보다는 내가 죽음을 맞기 전에 세상에 대한 후회, 아쉬움 이러한 정도를 줄여나가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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