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rates - BC470 ~ BC399
소크라테스 변명을 읽던 중 너무 식견이 짧아 (...) 소크라테스에 대해 더욱 알아보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책을 쓰지 않았다. 예수처럼 제자들이 남긴 글만 전해져 내려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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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99년 과두정이 실시되고 있었다.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이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고 행사하는 체계) 과두정 인사 중 그의 제자들과 플라톤의 큰아버지가 자리하고 있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을 산파하고 다녔지만, 민주주의 체제가 과두정을 몰아냄으로써 소크라테스를 시기하고 있던 체재의 일원들이 2가지의 죄목으로 그를 공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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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년들을 부패하게 했다.
2. 다른 신을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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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라는 작은 도시에 소크라테스는 유명인사를 찾아가 무지를 알려주었다. "내가 모른다." 라는 것을 깨달아야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대화를 할 수 록 잘난 유명인사 들은 그저 허세만 있을 뿐 진정으로 아는 것은 없었다. 또한 그는 길에서 대화 논쟁 토론을 통해 아테네의 젊은이를 스스로 생각하고 사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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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합의된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기득권 층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기성세대와 충돌" 이 아마 기득권이 가진 불편함 곧 불안함이였을테고, 그것이 소크라테스가 내란죄에 처해지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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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소로 500명의 사람들이 1차,2차 투표를 진행하게 된다.
(소크라테스 변명 편에서 이 투표에 대한 변론 리뷰를 작성할 계획이다.) 결국 그는 유죄 선고를 받으며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사형에 처해지기 전 반대급부의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를 망명하기를 바랐다. <소크라테스 변명> 책 표지에 자크루이 다비드의 그림 속에선 그가 사형을 선고 받기 전 많은 제자들이 그 주변을 둘러 싸고 있는 모습에서, 아마 감옥 문을 열어놓았다. 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사형 선고에 대한 여론 악화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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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과 함께 사형 전 독약을 마시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몸소 지켰다. "스스로 생각함의 가치" 이것이 그를 서양철학의 최초의 스승, 플라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그것이 후대 (아리스토텔레스) 까지 전해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 깊은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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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앎은 대개 관습적이며 타인의 지식이나 생각을 내것으로
착각하며 산다. 자신이 정말 원하고, 느끼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무지를 지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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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질문을 하는 종종 그것의 본질 "사랑은 무엇인가?" 라고 물었을 때 선뜻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해 정의하지 못한다면, 남들이 하는 사랑을 그저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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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책이란 나에게 why를 주는 소크라테스 같다. 그렇다고 행동이 없는 말은 아무 뜻 없는 작은 옹알이에 지나지 않겠지만, 인생은 하나의 지나침의 연속이니 미련과 후회를 갖기 보다 그저, 내가 몰랐구나. 무지했구나. 를 자각하며 조금 불편해도 그 틀에 끼워맞추려고 노력하는 삶 그것이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관습적인 삶이 아닌 진정으로 음미된 삶 만이 가치가 있다는 가르침이며, 그것이 진리를 위한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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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도 그 시절 소크라테스를 만났다면 플라톤과 같은 열렬한 제자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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