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개 -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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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개 -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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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개 - 김 훈




 누런 진돗개 보리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그린 김 훈 작가님의 책이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에 이어 작가님의 책을 보고 있노라면 "이건 정말 개가 쓴 것이 아닐까?" "말이 그땐 그랬었다고 작가님께 이른 새벽 긴 울음을 내었던 건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만큼 작가님의 눈을 닮고 싶고 작가를 너머 한 인간이 품는 그의 세계관을 참 본 받고 싶다.

 1부에선 주인공 개 보리가 태어남에 있어 형제 또는 어미와 함께 한 생활이 그려지고 2부에선 살던 마을이 수몰되어 어촌으로 이사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3부에선 다른 개들과의 만남이 이어지고 4부에선 이별을 말한다. 개라는 동물과 반려한지, 13년이 지나간다. 개들의 감정을 이해하며 읽는데, 자연스럽게 이입하고 눈물이 아주 줄줄 흘렀다.

 인간의 삶은 삶 자체로 느끼지 못합니다. 글자, 매체, 이런것들이 우리의 삶 사이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우리의 삶을 차단합니다. 우리가 우리 몸으로 직접 개입하고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개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를 통해 우리에게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에서 벗어나 세상을 직접 느끼는 곳을 집필 의도로 삼았었는데 그게 잘 표현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작가 김훈, 독자와의 대화 중

 인간은 참, 삶을 그 자체로 느끼지 못하고 하루 하루 살면서 겪는 현상이나 느낌을 개념화된 언어로 정리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느끼거나 혹은 뒤쳐진다고 느낀다. 이것은 실체가 없는 불안함이고 대상이 없는 뒤쳐짐이다.

 개는 언어가 없다. 온 몸으로 모든 감각으로 세상을 익힌다. 개 발바닥에 있는 굳은살 정도가 개가 느끼고 경험하는 세상이다. 아마 어촌 마을에서의 모습들이 내게 아련하고 따듯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의 시선이 아닌 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본문 중
(짧은 소설이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넝쿨을 당기면 부드러운 흙 속에서 주먹만한 감자들이
줄줄이 달려 나왔다. 할머니는 아궁이 불속에 감자를 구워서 나에게도 주었다. 감자를 굽는 냄새는 부드러웠다. 감자 굽는 냄새를 맡으면 내가 주인집 개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나한테 구운 감자를 줄 때, 뜨거운 감자를 깨물면 내 이빨이 빠질까봐 식혀서 주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가 어떻게 감자 밭의 들쥐들을 쫒아버렸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내 뜨겁고 독한 오줌의 힘을 말이다.

 비오는 날은 나무나 풀들, 바다와 산들 그리고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깊은 안 쪽에서 숨겨져 있던 냄새들이 밖으로 배어나온다. 그 냄새는 짙고 또 무거워서 낮게 깔린다. 나는 비 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쩔쩔 맸다.

 겨울의 냄새는 맑고 투명하다. 겨울에는 산과 들과 나무에서 물기가 빠져서 세상은 물씬거리지 않는다. 부딪히며 뒤섞이던 냄새들은 땅 속이나 나무들 속 깊이 잠겨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세상이 텅 빈 것처럼 콧구멍에 걸려드는 것이 없다. 그래서 쨍하게 추운 겨울날에는 멀리서 다가오는 작은 냄새가 한줄기 빛처럼 가늘고도 곧게 퍼진다. 겨울에는 가느다란 냄새들이 선명해진다.

 사람의 몸을 나무 상자에 넣고 뚜껑에 못질을 해서 땅에 파묻는 것이 죽음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주인님의 몸에서 풍기던 그 경유냄새와 밤바다에서 주인님이 나누어준 그 미역국 맛과 가을에 마당에서 도끼로 장작을 쪼개던 주인님의 그 아름다운 근육과 땀방울은 다 어디로 사라지는 것인지를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흰순이가 주인의 부름을 알아차렸다. 흰순이는 비척거리며 일어서서 주둥이를 땅에 끌며 다시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직도 힘이 남아 있었는지, 마당으로 들어가면서 흰순이는 꼬리를 흔들었다. 흰순이는 그런 개였다. 그것이 흰순이의 본래의 모습이었다. 흰순이는 풀이 돋아나듯이 바람이 불어오듯이 저절로 이 세상에 태어난 개였다.

 내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습기 빠진 바람 속에서 가벼웠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오는 날과 눈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 올 것이고, 세상의 온 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 거릴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전히 흰순이와 악돌이 들이 살아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여전히 냄새 맡고 핥아 먹고 싸워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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