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매일 실패해도 함께 갈게- 최지숙 김서현
처음에 이 책을 받아 들었을 때는 아, 도전과 실패 속에 좌절을 경험하는 딸에게 주는 에세이 정도의 형식의 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 첫장부터 자신의 딸의 자살시도의 현장과 자신의 딸이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상태(병)을 아주 가감없이 묘사하고 고백하고 있었는데 그 글이 그냥 일종의 자기 고백이 아니라 자신과 딸의 생과 사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는 위태로운 생의 고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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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내 마음의 병도 인지하기 어려운데, 타인의 마음의 병을 쉽사리 이해해주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수다 자리에서 어쩌다 거론된 인물에게 '걘 진짜 정신병자 같아' 라고 아무렇지 않게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사실 너와 내가 다르다고 선을 그었기 떄문에 가능한 험담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진짜 그러한 상황에 당면하고 있거나, 그러한 환경에 오랫동안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 도덕과 윤리에 관련된 일종의 큰 사건이 아니라면, 우리 주변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홀로 하고 있을친구에게 타인의 아픔을 한 줄로 규정하고 본인이 처방약을 지어줄 것이 아니라, 가만 친구가 놓인 상황을 짐짓 되짚어 공감해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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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것이 가족에게서 배우는 '모국어'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국어란, 대한민국 언어 '한글'이 아니라 엄마한테서 오는 모국어라고 말할 수 도 있을 것이다. 1차 집단인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가족과의 연결고리, 유대감, 지지대는 마음의 무한한 안정감을 제공한다. 밖에서 실패하고 돌아와도, 우린 다시 돌아올 안락한 집이 있으니, 그 공간이 따뜻하고 언제나 회귀할 수 있다는 인정을 받는다면 우린, 무한히 넘어지고 다쳐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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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에 딸 '김서현' 양의 마음에 더 공감이 되었다. 이미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 "우울증, 양극성장애, 기타조현병, 공황장애" 와 같은 복잡한 스펙트럼 안에 있는 그녀, 이러한 불편한 상황 속 어긋난 주인공이 되어버린 서현 양의 마음또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을 것이다. 가족에게서도 인정 받지 못한다면 어디에서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책을 읽으며 어떤 마음이 충돌하여 자꾸 고통의 나락으로 자신을 하강하는지 그녀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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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편견 없이 딸, 언니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져야할 것이지만, 이런 평이한 글들은 가족들이 처해진 상황에서 큰 효력이 없을 것이다. 갑작스레 딸에게 찾아온 '우울증'이란 불청객을 마주했을 때, 엄마는 엄마의 삶도, 가족의 삶도, 딸의 삶도 모두 지키려 고군분투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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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딸이 겪은 고초가 행여 엄마의 모자람 때문은 아닌지, 저는 불현듯 죄인 아닌 죄인이 되고 맙니다." 늘 잘해주어도 모자란 부모의 심정을 헤아릴 길은 아직 부모가 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서현양의 하루엔, 조금은 행복할 만한 느낌들을 찾고 그 느낌들 안에서 조금씩 자신에 대한 충만함을 찾기를 소원한다. 그녀에게 너무나 좋은 가족들이 있기에 말이다. - 어머니 최지숙 씨는 월간잡지 스크린의 기자로 활동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자연스러운 필력에 놀랐다. 또한 글 중 자신과 딸이 좋아하는 영화를 상황에 빗대어 설명하는 부분들이 있어, 책을 읽는데 더욱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었다. (불량공주 모모코, 레이디버그, 알라딘, 이웃집토토로, 토이스토리4, 어벤져스, 버드박스, 그것, 마이너리리포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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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얼굴을 맞대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오히려 더욱 일상을 공유하지 못한 채 무심히 보내는 하루 하루가 너무 많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모든 집에 늘 부드러운 물결과도 같은 파도로 서로를 둥글게 부딪혀 깎아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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