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이기는 독서 - 클라이브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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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죽음을 이기는 독서 - 클라이브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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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이기는 독서 - 클라이브 제임스



 2010년 초, 병원 문을 나서는 내 손엔 백혈병 확진과 함께 폐까지 망가졌다는 진단서가 들려 있었다. 귀에서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된 마당에 새 책이든 중요한 책이든 간에 책이란 걸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혹은 내가 이미 아는 훌륭한 책들조차도 다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제 나에겐 책을 끝까지 읽을 시간이 없을 수도 있기에,

 아주 가벼운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조차도 대단한 일처럼 보였다. 자리보전하고 몸져눕는 대신 다시 한 번 회복해서 두 다리로 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나중에' 라는 개념이 갑자기 비현실적이라기보다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불이 언제 꺼질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다면 불이 꺼질 때까지 책을 읽는 편이 나을 것이다.

 죽음을 이기는 독서 -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고 싶은 인생의 책들 이란 제목과 부주제와 나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평소 헌책방을 애정하고 집에 책이 많이 쌓여 부인 몰래 책들을 숨겨놓기도 하는 작가는 호주의 비평가이자 번역가 그리고 방송인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 선고를 받고 성경만을 읽을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저 불이 꺼질 때를 모른다면, 불이 꺼지기 까지 읽자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생에 좋아하던 책들을 다시 꺼내였고, 그 책들에 대한 비평으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되었다.

 책의 첫 장엔, 영국 케임브리지 아덴브룩 병원에서 나를 돌봐 준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게 그 다음 장엔 내일은 내가 죽을 차례다. 라고 적혀있었다. 그의 위중한 병명으로 볼 때에, 아마 얼마 전 웃으며 가벼운 인사를 했을 이도 며칠이 지나 그저 한 인간에서 무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이다. 무의 세계를 지켜보는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며 책들을 읽어냈을까?

 (하루는 소변 주머니가 터져 간호사가 바닥을 닦아 주었을때 그는 연신 미안하다고 간호사에게 사과했다. 간호사가 그만 사과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는 그 순간 자신의 존재 자체가 미안하다고 느껴졌다고 했을 때 글을 읽는데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아프다는 것 하나만으로 고독, 슬픔 같은 다양한 감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올텐데, 덧붙여 자신의 무력함으로 존재 자체가 미안해졌다고 생각할 때 작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순간 친절한 간호사의 한마디, 역시 말 한마디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 동조한다.)

 내가 이 책을 구매 한 계기처럼 그가 죽음까지도 이기고 싶었던 책목록 대해선 한 글자도 수첩이나 인터넷 도서 목록에 담지는 못했다. 내가 생각한 이 책의 결점이자 아쉬운 부분이다. 헤밍웨이, 셰익스피어 같은 거진 위대한 작가를 배제하고는 작품들을 검색해 보아도, 모두다 영어 원서였으며 나는 아직까지도 그가 찬양하던 '콘래드' 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 수 없어 아쉬움이 큰 책이였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은 '아쉬움' 이란 단어에 기인해서 였을 수 도 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책들을 다시 읽을 수 없음을 슬퍼했던 그 아쉬움이 책 속에 녹록히 들어있었다.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는 아쉬움, 좋아하는 것들을 더 하지 못하는 아쉬움 같은 인생의 회한들을 겪을 터다. 20대의 아쉬움은 아쉬움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시간과 세월이 비교적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습관처럼 번진 이 고상한 독서 취미는 아마 죽을 때까지도 반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있으며, 나의 마지막 책은 어떤 책이 될까? 그때 드는 아쉬움이란 무엇들이 있을까, 짐짓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지식인의 서재가 사라지고 있다. 어떤 도서들을 검색 엔진을 통해 추천받을 수 있겠지만, 내가 책속에서 의아하게 생각하며 보았던 콘래드랄지... 콘래드 잊혀지지도 않겠다... ai가 이러한 작품들을 추천해줄까, 아님 재야에 묻힌, 초야에 돋힌 작품들은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작가처럼 가족들이 책에 취미를 가지고 서로 책을 선물해준다랄까,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나눔한다랄까 그렇게 대화의 풍미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영화 속 환상같은 걸로 묻어두고, 이러한 지식인들의 서재를 훔쳐보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겠다.

 

 북계정하면서도 많은 책을 소개하고 소개 받고 있다. 작가는 문화에서 중요한 건 자격증이 아니라 열정과 진정성이라고 말한다. 무언가 추천해주는 건 쉽지 않다. 어떤 책을 어떤 시기에 만나느냐 전체 줄거리 보다 하나의 문장이나 문구가 내 마음을 사로잡느냐에 따라 인생 책이 달라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작가의 진정성과 열정은 느껴졌으나, 모르는 책과 작가에 대한 설명들에 내 전공이 아닌데 전공 학자들의 토론에 참여하는 것 같았다. 동조하며 읽고 싶어 저서를 찾아봤지만 모두 원서로 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좋은 문장들을 찾으려 완독하였으니 책을 통해 하나라도 상상해보고 죽음과 독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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