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영감 - 오노레 드 발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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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고리오영감 - 오노레 드 발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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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 오노레 드 발자크



 "부유하건 가난하건 간에, 그들은 변덕스런 기분을 위해서라면 언제나 돈을 쓰면서도, 삶의 필수품을 사기 위해서는 결코 돈을 쓸 줄 모르는 것이다. 그들은 외상으로 얻어지는 모든 것은 헤프게 쓰면서도 즉석에서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에는 무엇에나 인색하며, 손에 들어올 수 있는 모든 것을 낭비함으로써 손에 넣지 못하는 것에 복수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고리오 영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자본주의로 막 들어서기 시작한 파리의 모습, '황금, 물질만능주의'의 모든 것을 그려내고 있다. 시점은 '라스티냐크' 라는 젊은 법학도이다. 그는 몰락한 시골 귀족의 출신의 아들이며 가족의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파리로 상경한다. 아주 인색하고 꾀죄죄한 보케르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묵으며 그를 중심으로 하숙집의 7명의 사람들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장 중심의 인물은 소설의 제목처럼 '고리오 영감' 이다. 라스티냐크는 고리오라는 인물에게 집중하게 되는데, 그는 어느정도 돈이 있는 것 같아보였으며 아침 점심으로 귀족 출신으로 보이는 아주 예쁜 여인 두명이 번갈아 방문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방아에도 자주 오르내렸다. 또한 귀족 출신의 여인이 왔다가면 고리오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하나 둘 팔고 없어져, 이를 놓고 하숙집 사람들은 그가 여인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하나 둘 갖다바치며 애정을 갈구하는 것이라며 늙고 추악한 영감이라며 대놓고 비난한다. 영감은 식사 자리에서 "그 아이들은 내가 세상에 내놓은 나의 딸이오" 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라스티냐크는, 자신의 먼 사촌인 귀족 드 보세앙 부인의 도움을 받아, 고리오 영감의 딸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두 딸 중 둘째인 드뉘싱겐 부인 (델핀) 에게 사랑에 빠지게된다. 왜, 귀족의 차림세를 하고 있는 두 딸과 다르게, 고리오 영감은 음침하고 어두운 골목 하숙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일까?

 "그 방의 모습은 냉기가 돌아 가슴이 메이게 했으며, 그 방은 감옥의 가장 음울한 감방과도 흡사했다. 외젠이 탁자 위에 촛대를 올려놓았을 때 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고리오 영감은 다행히 보지 못했다."

 고리오 영감은 사실 제분업자로 혁명 혼란기때 밀가루를 통해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는 두 딸에게 자신이 생활할 작은 연금 외 모든 재산을 주었으며 그것들을 통해 첫째 딸은 귀족에게 둘째 딸은 독일의 은행가와 결혼하여 엄청난 부를 두르고 살았지만, 고리오의 재산을 받고난 후에는 두 사위 모두 고리오가 방문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그의 딸들이 오전과 점심을 나누어 방문했던 것이였다.

 글의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라스티냐크는 점점 자신의 학업과는 멀어지고 사교계에 발을 담아볼 요량을 부린다. 가족에게 위급하게 편지를 넣어 받은 돈으로 귀족과 어울리 옷과 모자 등을 구입했으며 사교계의 큰 새로운 바람을 불어일으킬 욕망, 출세, 허영에 사로잡히게 된다. 특히나 둘째딸 델핀에게 사랑에 빠지게되며 구애를 하면서 고리오 영감의 처절한 사연들을 하나 둘 알아간다.

 두 딸이 고리오 영감에게 방문하는 것은 그저 자신의 아버지의 얼굴을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마저 남은 재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사위들은 각종 어음과 도박 빚에 결혼 지참금으로 준 돈들을 탕진 했으며 첫째 딸은 남편의 도박 빚과 사교계에 입고 갈 드레스를 살 돈을 달라고 사정을 한다. 모두 자신의 안위와 어떻게든 사교계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욕망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 앞에 고리오는 그저 돈을 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은그릇을 녹이고 은버클과 그마저 남은 연금 등을 모두 팔아 하루에 하나의 빵으로만 식사를 대신한다.

 처음엔 장편 소설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라스티냐크는 외젠으로 드뉘싱겐 부인은 델핀으로 보트랭은 자크콜랭으로 부르는 사람에 따라 여러번 이름이 달랐기 때문이다. 작은 수첩에 관계도를 그리며 150페이지 정도를 지나니, 하숙집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의 몰입도가 아주 강했다.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모르고, 사교계 곧 귀족들의 생활을 동경해 그것에 따라가다가 자신의 목 (처신)이 잘리게 되는 프랑스 파리 사람들의 물질만능, 황금만능

시대의 모습들을 보게되었다. 1800년대의 모습의 일부는 지금 시대와 함께 봐도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모두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 속에서 무던히 괴로워하고 한숨 짓느라 세월을 허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자기 만의 이상을 그저 이상으로 치부하고 꿈이나 희망 같은 것 없이 살아가기엔 너무 퍽퍽한 삶이다. 세상 속의 나 자신 (위치)를 알고 자기 자신을 타협시키던, 세상을 타협시키게 하던, 역시 살고 있었던 삶 끝에 와있던 인생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 불확실성 하나가 우리 삶을 조금 더 다양한 상상력으로 가득차게 만들지 않나 생각한다. 

 

 중반부부터 벌어지는 사건의 중심인 라스티냐크, 보트랭, 그리고 고리오 영감의 강한 부성애 만큼 대조되는 두딸의 막장 드라마와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하는 포부르생제르맹의 살롱 밑의 어둡고 축축하고 '유통이 끝난 동전의 표면처럼 마모된 표정'을 가진 하숙집 사람들의 대조가 너무 사실적이라 책을 읽으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더 없이 비통하고 절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그는 이 세상을 사람이 한 발만 담그면 목까지 빠져버리는 진흙의 바다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는 비속한 범죄들만 저질러진다. 차라리 보트랭이 더 위대하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사회의 3개 표현인 순종, 투쟁, 반항 즉 가족과 세상에 보트랭을 보아왔다. 그런데 그는 감히 어느 편에도 서지 못했다. 순종은 권태롭고, 반항은 불가능하며, 투쟁은 불확실했던 것이다. 

 

 학자들이 동물을 분별해 종을 나누었던 것과 같이 오노레 발자크는 인간을 분별해 종들을 구분시켰다. 

(그가 137편이 넘는 소설을 하나의 작품으로 묶은 인간희곡) 발자크의 구분에 나는 어디에 속해있을까, 삶과 내가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더 얼마나 노력해야하는 것일까? 너무나 사실적인 인간 상 앞에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가 없게 만드는 책이였다. 후반부엔 속이 끓을 수 있다. 서머싯몸이 선정한 세계 10대 소설이며 빅토르 위고와 샤를보들레르의 추천사가 박힌, 고리오 영감 긴겨울 읽어보시길 권장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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